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대니와 크리스티안, 그 관계로 보는 <미드소마> 와~~
    카테고리 없음 2020. 2. 24. 06:01

    >


    아리 에스터 감독의 유전을 보고 아주 오랫동안 기다리던 영화 미드소마를 드디어 봤다.영화를 알고 보니 생각보다 잔인하다느니, 전작보다 못하다느니, 결국 해피엔딩이니, 세드엔딩이니 하는 드라마 미드소마에 관한 이 말은 아주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유전만큼 혹시나 유전보다 더 재미있게 봤다. 전혀 지루하다고 느끼지 못했어. 오히려 처음부터 잡아당기는 느낌.그리하여 미드소마는 공포가 가미된 관계와 트라우마 극복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생각보다 잔인함이 더 심했다. 초반에만 조금화면이 예뻤고.아래에서는 미드소마 후기.유전과 미드 소마 스포츠 1러시아를 포함한다.미드소마는 동상의 자살로 영화가 시작된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부모님과 동반 자살합니다. 이 전세에서 조울증을 앓던 대니의 동상은 부모와 싸운 뒤 부모가 자던 시간 테이프로 문틈을 막은 뒤 가스로 부모를 살해하고, 본인도 가스를 마시며 죽는다. 대가족의 대나무 소음을 듣고 대니는 통곡합니다.​​​​​


    >


    여기서 인상 깊었던 것은 대니와 크리스티앙의 관계. 영화 속 크리스티안과 대니의 감정선이 왜 본인의 현실 커플 중 하나 같고, 본인은 연꽃의 온도를 보는가 했다.​ 두 사람은 대니의 스토리에서는 4년 2개월을 사귄 연인이며 ​, 크리스티안의 기억 속에서는 3년을 만났던 커플이든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는 대니와 달리 3년경만 본인지 있다는 기독교의 스토리에서 보듯 두 사람은 권태기를 겪는 중임. 대니는 오래전부터 정신과 약을 복용했고 가정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왔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크리스티안에 의존한 모습을 보인다. 크리스티안에게 의지하고 싶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지칠까 봐 걱정한다. 심리에 담긴 스토리를 다 이루지 못한 채 크리스티안과 통화 중 숨죽여 운다. 별것도 아닌데 또 그렇다는 말을 들을까봐 괜찮다는 크리스티안에게 이번에는 아니라는 스토리를 당하면 또 내가 예민하게 구나 싶어 내 감정이 어떤지조차 확실하게 스토리를 할 수 없게 된다. 크리스티안도 대니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니의 감정적인 상태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집중하고 대니를 공감하고 이해한다기보다는 남자 친구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여기까지 봐도 대니의 모습이 바로 현실의 여자 친구 같은 건가! 모든 커플이 하나 00퍼센트 그렇다고는 안 되겠지만, 연어 린이를 하던 여성들이 한번쯤은 미드 소마 속 대니 역할을 수행하고 보았을 것이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두 대사는 욘 아이의 온도의 중국 이민기와 김 민희 그 자체다.​​​​


    ​ ​ ​ 뭔가 할 얘기가 있었는데, 크리스티안의 그 침묵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아서 무서워서, 그 말이 옳다고 여기고 있지 않으면서 모른다고 납득하고 더 예기하면 집착적으로 보 1인지 무서워서, 그 걱정 때문에 최근 봉잉룰 힘들게 하는 동생의 정세보다 이 순간, 크리스티안의 생각이 더 걱정되는 그 복잡함.그러니까 데니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다. 동생 사건에 앞서 자꾸 크리스티앙을 생각하고, 울고, 아이처럼 행동하는 이 모습이 지겨워지는 것을 알기 전에 크리스티앙은 그렇게 보이고,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사건에 대해 이 이야기 본인을 관철하지 못합니다. 예기했던 순간, 생각만큼의 사건은 정예기 사건이 되어버리니까. 바로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의 비극은 시작된다.그리고 이런 요소는 전작 유전에서도 등장한다. 바로 어린이용 닭발이의 남편입니다.매일 밤 극장에 간다고 예상하는 아이지만 영화관이 아닌 줄 알면서도 듣지 않고 모른 척하는 남편.묘가 폭로된 것을 알면서도 아이에게 숨기는 남편과 심정상 그 다소 사이에 본인 탈서도 남편에게 숨기는 아이이기 때문에. 본인 중에는 어린아이가 심정상 그 닷소리에 가 있었다는 것을 예기하지만 남편은 그 사실을 믿지 않고 무덤을 파헤쳐 장모의 시신을 집에 숨겨둔 범인이 어린이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감독의 아리에스터는 가까운 관계에서의 소통 부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소한 침묵은 쌓여서 서로의 관계에 균열을 만들고, 결미에는 금이 간 관계를 깨뜨리듯이. 사건가 정예기 사건이 되어 버리다 하지만 결미는 대화와 부딪치는 것만이 그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예기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는 흔히 서로에 대한 배려라는 이야기로 그 순간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 ​ 어쨌든 이 지역에서 대니는 제3자인 또 다른 친구에 크리스티안의 의자 트리를 나누지만 그 봇카라고 할 이야기가 크리스티안의 사건 그 자체입니다. 대니를 벗는 크리스티안이 질릴까봐 걱정하는 대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질리는 건) 크리스티안의 사정이고, 그렇다면 헤어지는 게 맞다. 정예기 사랑한다면 넌 그럴 수 있어? 당연히 너에게 공감할 것이다. 정예기 한 번은 들은 조언이 아닌가.대니의 남동생에게 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고, 대니가 남동생 때문에 패닉에 빠져 있는 것을 알면서도 파티에 본인이 되어, 대니에게 전혀 공감하지 않는 크리스티안의 행동. 대니를 적어도 예전처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니도, 보는 우리도 느낄 수 있다.​​​


    >


    대니에게는 매우 수동적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크리스티안도 그에 못지않게 매우 수동적이다. 대니는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식어버린 상대라도 헤어질 생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티안은 같지 않다. 친국과의 파티에서 대니와의 관계를 소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본인 이별을 고려하여 마술이식은 희미하게 일어나면서도 대니와 헤어지면 스토리를 할 수 없어 꾸물거리기만 합니다. 어쩌면 조쉬의 이야기처럼 크리스티안은 회피성 성격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논문이 본인의 대학원 사건과 같은 정세에서 회피하고, 대니에 관한 사건도 회피하고. 논문에서 대니로, 대니에서 논문으로 두 가지 정세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다른 한쪽으로 도피 중이었을지도 모른다.우유부단한 크리스티안은 대니에게 헤어지자는 스토리도 못하고 스웨덴에 오지 스토리라는 스토리도 못해요. 누구 본인은 직접 자기 손으로 끝내는 일이 없다. 대니에게는 스웨덴에 가기 싫은 척, 안 가려고 했다면서 대니의 입에서 너희들 혼자 갔다 와라는 스토리를 기다리고, 친국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대니와 다 같이 가는 척 한다고, 하지만 대니는 안 간대요. 과연 크리스티안이 정 스토리를 몰랐을까. 다만 자신의 친국조차 사실대로 대니가 정스토리 스웨덴에 간다는 스토리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소견합니다. 예를 들어, 그런 소리와 동시에 대니가 스스로 가지 않는다고 스토리 해주길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크리스티안은 이렇게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항상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는 곳에서, 과인은 어쩔 수 없었다, 라고 하는 선지를 선택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끊고 묶는 것이 없으니 오히려 이기적인 역할이다.그런 그의 태도는 대니에게 독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시간에 우리는 스스로 아름다운 역할을 맡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헤어지는 순간 어설픈 착한 역할을 하지 않는 등... 또 대니는 크리스티안이 거짓 없이 내 생각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다. 대니의 트라우마가 화농한 것은 크리스티안의 책입니다 또 배제할 수 없다. 영화 장면에 등장하는 크리스티안의 사연을 홀이 주민 중 한 명이 엉덩이를 들어올리며 도와주는 장면이 있는데. 어쩌면 그 장면 자체가 크리스티앙의 이런 정확하게 연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


    이런 크리스티앙의 무흥미함은 홀가에서조차 계속되고 있다. 대니의 생일을 잊고 급히 케이크를 준비하고 대니의 트라우마를 알면서도 논문에 매료돼 대니를 방치한다던가. 얼마 전 가족이 자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니가 힘든 줄 알면서도 절벽에서 뛰어내린 시체를 본 대니보다 그 순간 그 장면에 집중하는 크리스티앙이란.... 그래서 알리에스터가 이 영화는 커플을 끝내는 영화라고 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트리우마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 순간 옆에 있는 사람보다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를 깨는 장면을 볼 수 있을까? 런던에서 온 그 커플처럼 적어도 대니를 안아 주거나 보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았나. 적당한 의무감으로 이루어진 관계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


    크리스티안은 끝까지 대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적어도 대니는 아파하는 단편적인 감정이라도 크리스티안에게 보여주고, 크리스티안은 대니에게 나쁘지 않다고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한 어떤 감정도 내용 없이 얼버무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사람을 자처해요. 마야가 나쁘지 않은 걸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숨기고, 결국 마야와 동침합니다. 결자내용은 대니가 스스로 크리스티안의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대니에게는 잔인한 모습이었을 텐데, 새는 스스로 나쁘지 않은 세계를 부화해야만 부화할 수 있다고 말했듯이 대니는 크리스티안과 마야의 동침 이후 크리스티안과의 관계에서 칭송받는다. 괴로웠지만 둘 사이의 끝은 정확하게 된 것.​ 9명의 희생자는 5월의 여왕의 허락이 필요하다. 크리스티안은 그 후보의 하과인이며, 메이퀸 대니는 희생을 허락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불타는 목조를 보면서 결실용 대니는 웃는다. 그 웃음은 대니의 트라우마를 극복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크리스티안의 죽음으로 복수심을 해결했다기보다는 그 불편한 관계 자체가 사라진 데 대한 홀가분한 마음이 느껴졌다.대니를 따라다니던 동상의 자살과 가족의 죽음, 그래서 크리스티안에 대한 불안감.상처는 상처로 남고 사라지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희미해지는 법. 적절한 시간과 적절한 때가 있으면 내용인 대니의 트라우마 극복에는 이해와 공감대가 바탕이 된다. 크리스티안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공감을, 홀가 사람들은 대니에게 기꺼이 준다. 마야와 크리스티안의 잠자리에서 일어난 뒤 동상의 자살 장면을 본 당시처럼 대니는 미친 듯이 외칩니다. 그래서 그들도 미친 듯이 소리치며 다 같이 울어준다. 마치 한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내용이다.호르가는 낯선 이방인을 차례로 죽이고 근친을 하는 미친놈이라는 집단이다. 누군가에겐 그런 광기의 집단이라고 해도 내게는 내가 원하던 그냥 하인을 내보내는 곳이라면 그걸 거부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도 여전히 그냥 '역시 라이 집단'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대니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펠레가 잠깐 보여준 너의 기분은 과인이기도 하다는 상냥한 공감대였고, 크리스티안은 대니에게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홀가는 대니에게 그것을 안긴다. 드디어 위로를 받은 것이다


    >


    >


    ​ ​ 91의 축제 기간 아직 마지막 날은 오지 않았다. 대니의 운명이 홀가의 인원으로 대니를 이끌 것인가, 아니면 액자 속에 남아 있던 다른 메이크업 인 것처럼, 어렴풋한 행방에 끝나는지 모르겠다. 끝이 죽 소음 1부터 동화 1도 모르지만 어느 쪽도 다니에는 행복한 정예기, 결국 아닌가 싶다. 정예기 결국 대니의 손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마주하고 끝을 고하고 극복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주인공의 대나무 소음과 삶을 떠나 정신적 해피엔딩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점이 전작 유전과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


    그래서 역시 한편에서 생각하는 생각은 동생에게 대니는 크리스티안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물론 대니는 크리스티안처럼 무심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동생과 소통이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라지게 행동하는 동생의 행동이 한두번이 아닌 것 같지만, 크리스티안의 피곤해서 나가는 감정 상태를 대니가 기민하게 느끼고 반응한 이유는 어쩌면 대니가 리드하고, 그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 1지도 모른다.하필이면 동생이 대니만 두고 다 같이 죽은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서로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었고, 모두가 죽음으로 대니만을 홀로 남겨 고통을 주고 복을 부르기 위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자기 혼자 죽은 것도 아니고 대니까지 함께 죽이려 한 것도 아니고 대니만 빼고 죽어버렸을까. 그것도 연락까지 남기면서. 나라면 잘 다투던 부모에게 너 카누 구기 때문에 단독 자살하거나 부모까지 계속 1감정으로 대니도 함께 죽이거나 살해되었다. 우는 대니의 모습이 죽은 대가족에 대한 외침인지, 동생에 대한 외침인지 알 수 없다. 무엇이든 단독으로 버려지는 것에 강한 공포를 느끼게 된 것은 자신만 남기고 자살한 대가족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홀가에서도 자신만 두고 가버리는 깡패를 악몽에 꾼 적이 있고......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동생이 대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할 것을 알았다면 대니는 동생과 대가족이 죽는 것을 막을지, 아니면 그 죽음에 동참할지도 모른다.​​​


    >


    ​도 알고 싶은 것은 9명의 희생자.크리스티안, 조쉬, 마크, 잉그마르, 랜덤으로 선택한 홀가인 두 명. 남은 두 사람은 누구일까.​​​


    >


    초대받은 대니, 그렇게 재미있었던 점은 홀가의 모든 것이 마치 대니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원래 목사 같은 사람을 만날 때도, 대니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정내용 환영처럼 기다렸다며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봤을 때도 그렇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스스로 죽음을 택해 죽는 것이 명예라고 소견할 것입니다라는 시브의 내용.얼핏 대니를 보면서 그 내용이었어요라고 눈이 마주친 것처럼 느껴졌지만 대니에게 해주는 내용 같았다. 동생과 부모님의 죽음은 명예로운 죽음 같은. 슬픔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렇게 됐어야 했다. 유전이 떠올랐다. 아기니의 어머니가 슬퍼하지 말라, 큰 대업 때문에 영광이 돌아올 것이다. 할머니와 찰스가 참수된 것이 큰 그림이었듯이 대니 부모의 죽음도 어쩌면 홀가를 위한 죽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신은 대니의 부모였을까. 호르가는 동생의 자살에 개입한 것일까? 그것은 비약적인가 싶더니, "유전 때문일 수도 있다"라고 했다.​​​​​


    >


    참수가 나쁘다, 머리 깨는 건 나쁘지 않다, 안면 훼손은 감독 취향인가? 특히 머리에 집중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확실한 대나무 소리 방법이라서? 아니면 한 사람을 대표하는 게 머리와 얼굴 그 자체니까? 아니면 머리가 열매를 상징하니? 특히 가까운 관계 속 의사소통의 부재가 나쁘지 않다, 대화의 단절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멀고 낯선 사람에게 받는 위로가 나쁘지 않다, 공감, 희생, 친구가 되지 못하는 운명이 나쁘지 않다, 사이클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리에스 텔에 소가족이 나쁘지 않고 가까운 관계 아니며 관계 자체 또는 대화는 어떤 의미 1에서.시체가 예술적으로 나쁘지는 않다.이 블루잇딘 시리즈가 안 맞아서, 어쨌든 그 안에서 사진을 찍는 살인마가 나쁘지 않다고 하는데 그 애가 보였어. 예술적으로 살인하고 반복적인 장면 재생으로 전시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모습을 영화로 보는 느낌. 폐로 날개를 만든 모습이 나쁘지 않고 눈에 박힌 해바라기 꽃.검은 종자가 눈알처럼 보여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라고 1들에 내장을 치에우고 괜찮고 괜찮은 많은 가지를 꽂아 두었습니다만, 확실히 시체임에도 불구하고 예뻤다. 아르누보의 그림을 보는 줄 알았다.......체험적인 영화대니가 숨을 쉴 때마다 꽃봉오리도 같이 모여들고, 펼치기도 하고 1롱고리은 화면이 호르가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화면이 정예기 화려하다. 눈이 즐거워. 개인적으로 옛말을 자세히 보면 한번쯤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3시간 짜리 감독판이 공개한다고 말하지만 다시 한번 보고 싶어.p.s 크리스티안 같은 사람과 용아이하지, 빨리 버리는 것이 이득입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